07/13/10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하이킹

미친듯이 부는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아침이 찾아왔다. 멀쩡한 건물속에서도 이렇게 추운데 왜 겨울철에는 일반 refugio나 캠핑장은 운영을 안 하는 지 알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는 식사인 조식은 차린건 별것 없는 기본 식사였지만 산속에 들어와 워낙 허하게 지냈기에 맛있었다. 그리고 그어떤 진수성찬보다도 레스토랑에서 보는 끝내주는 경치가 맛을 업해줬다. 삼각형 표족한 지붕 모습을 한 레스토랑/라운지 공간은 지붕까지 창으로 되어 있어 전망을 바라보기 아주 좋았다. 밥을 먹고 있는데 직원 중 한명이 밖으로 나가 빵 몇 조각을 흘려놓길래 개를 기르나 했더니 무려 여우가 와서 먹었다. 이쪽 여우는 잿빛과 갈색이 있다는데 얘는 갈색 여우였다. 두툼하고 폭신해 보이는 꼬리만 아니면 개라고 해도 믿을것 같았다. 멍멍이처럼 순하고 귀엽게만 생겼는데 빵을 먹을때 이빨을 보니 역시 맹수가 맞아 보였다. 여우는 워낙 사람들이 주는 밥에 익숙해 졌는지 빵을 모두 먹고도 별로 경계하는 눈빛도 없이 그자리에 풀썩 앉아 늘어져 쉬다 갔다.

오늘은 유일하게 하루 온전히 이곳에 있는 날이니 제대로 하이킹을 해보자 했다. 우선 어제 가다가 실패한 뒷 동산의 Mirador Las Torres라는 뷰포인트까지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산을 오른지 30분도 안되어 길은 너무나 가파르게 변했고 우리의 일반 운동화는 얼음으로 변해버린 등산길에서 쭉쭉 미끄러졌다. 결국 언덕을 오르기는 실패로 끝나고 대신 W트레일의 오른쪽 끝자락에 있던 우리 호텔에서 반대편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이곳도 지도상으로 보면 편한 평지같은데 요즘 워낙 사람이 뜸해서인지 워낙 거대한 공원이라 그런지 길도 똑바로 나있지 않고 곳곳이 진흙도 있어 꽤나 난관이었다.  그길을 따라 두어시간 걷다보니 참 아름다운 경치의 연속이었다. 특히 얼어붙은 호수로 비치는 눈덮힌 산은 마치 한폭의 그림같았다.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시간을 감안해서 어느 순간 돌아와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런 코스를 10일씩 걸을 수 있다니 다음에는 꼭 성수기때 와서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물론 달룡이는 반대하겠지만. 하지만 성수기에는 사람들이 버글버글하다니 이런 비수기에 와서 마치 자연속에 우리밖에 없는 듯한 이 느낌이 좋다. 오늘 역시 호텔을 나서서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제는 호텔을 통으로 빌리는 것으로 모자라 국립공원도 통으로 빌린 느낌이다 ㅋ

라스 토레스 호텔로 다시 돌아오니 프론트에서는 우리에게 방에 딴 사람이 와 있다고 했다. 뭔 소린가 생각을 해보니 어제 왜 우리 둘만 자는데도 트리플 룸을 줬는지 알것 같았다. 침대당 한명씩 손님을 받아 원래는 호텔 이용객이 아닐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우린 싸게 왔고 이상한 사람만 아니었으면 상관없을것 같았는데 다행히도 스코틀랜드에서 온 저널리스트로써 점잖고 무엇보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산티아고에 살고 있다며 혼자 여기까지 왔다니 대단했다. 우린 괜찮은데 아저씨가 달룡이도 있어서인지 자꾸 눈치껏 자리를 비워줘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저녁에는 여기 와서 유일하게 돈내고 식사를 사먹었는데 한사람당 25불이나 하는 식사치고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사실 파타고니아까지 왔으니 맛있는 양고기가 안나올까 기대했는데 그냥 기내식 같은 성의없는 세트메뉴가 나왔다. 어차피 몇명 안되는 투숙객에게 다른 선택없이 지급 되는 음식이고 물자가 귀하고 그런걸 다 감안해도 참 별로였다.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아저씨한테 미안하니 우리가 다른데 있다가 들어가자고 해서 우리방 근처에 있는 라운지 공간을 갔는데 그곳에는 fireplace에 두툼한 장작을 몇개나 넣어나 방보다도 엄청 따뜻하고 좋았다. 진작에 알았으면 어제도 여기서 몸을 녹이고 들어가 잘걸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한참을 불앞에 앉아 얘기도 하고 나무도 뒤집고 하다가 문뜩 그 옆에 있는 문으로 밖을 나갔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봤다.

별이 빼곡히 박혀 있는 것은 기본이고 하얀 띄같은 은하수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동안 여행다니며 봤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밤하늘은 요르단의 와디럼과 아이슬란드를 꼽을수 있었는데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보는 야경은 그것보다 한 세배는 멋진듯 했다. 오늘 낮의 경치나 밤의 경치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어제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인가 하며 툴툴거렸던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경치가 밥 먹여주는 레스토랑 공간



두툼한 꼬리가 아니면 동네 x개인줄 알았을 여우


이렇게 보니 꽤 여우같다 ㅋ


앉아있으니 더더욱 멍멍이같다


호텔을 나와 Mirador Las Torres라는 뷰포인트까지





하지만 얼음판이 된 산길은 너무 미끄러워 30분만에 포기


그리고 대신 선택한 평지 트레일. 사실 어디가 길인지 잘 알수도 없을 지경


이쪽 돌은 흑연을 보는듯 ㅋ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 모두 토레스 델 파이네.. 저쪽 가면 만년 빙산도 볼수 있다는데




그래도 어렵게 돌 위에 카메라 놓고 단체 사진 한장 찍었다


비싼 가격 대비 영 별로였던 저녁 식사


그리고 별이 가득한 하늘은 우리의 기술과 카메라로는 역부족.. 우리들 마음속에만 남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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