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10 케냐 도착, 하지만 말라리아 약에 무릎 꿇다.

이집트에서 밤 10시 45분에 출발한 케냐 나이로비 행 이집트 에어 비행기는 새벽 4시쯤 도착을 했다. 호텔방에서도 잠이 잘 안오는데 비행기안인들 잘 잘리는 없고 난 멍하니 한 30분 정도 잔 것 같았다.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소리는 다 들리고 마치 살짝 환청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정도였는데 달룡이는 거의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카이로 공항에서도 거의 쓰러져 있더니 당연한 결과였다.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가 되었지만 입국을 해서 비자는 받아야 했기에 입국 심사대에 줄을 섰다.
케냐 입국 비자는 25불로 아프리카 치고는 매우 양호한 편으로 아래 국가들 알아보니 주로 인당 100불이었다. 7일짜리 트랜짓 비자는 15불밖에 안 해 살짝 망설였지만 아프리카이기에 어떻게 될지를 몰라 정상 비자를 받게 되었다.
관료주의에 쩔어보이는 입국 심사원은 내가 작성한 서류들을 한명 한명씩 순서있게 정리해서 달라고 했지만 더이상의 태클은 없이 우리의 여권에 손으로 비자를 적어줬다. 비자를 받고 짐 찾는 곳에서 짐도 찾았지만 우린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오늘의 일정은 아침 8시반 나이로비 시청 앞에서 여행사 분을 만나 바로 2박3일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으로 사파리를 가는 것 이었다. 그래도 아프리카인데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에서 사파리를 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게다가 알아보다 보니 나이로비의 한국 현지 여행사가 꽤 싸게 마사이마라 사파리 모객을 하고 있었다. 마사이 마라는 2박3일 일정이 가장 짧고, 그게 인당 390불(USD)이었는데 이게 내가 이메일로 여기저기 알아본 것 중에서는 가장 저렴했다. 나이로비에 가서 천천히 알아보면 좀 더 쌀 수도 있겠지만 일정이 늘어날 수도 있고해서 엊그제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 바로 가는 것으로 컨펌을 받은 것 이었다.
하지만 이 시커먼 새벽에 나이로비 시내에 나가봤자 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을 건 너무나도 뻔했다. 여행사 담당자인 기숙희씨는 새벽 6시가 넘으면 30분 거리인 공항에서 시내까지가 한시간 걸릴 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하니 일찍 공항에서 나와 시청 앞 카페에 가 있으라 했지만, 그건 현지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난 절대 우리 안전을 담보로 어두운 시간에 나가 있을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달룡이는 거의 정신마저 희미해져가고 있어서 고민끝에 공항에서 있다가 6시 반쯤 나가보자 했다.

우리의 세계일주 첫날 뭄바이 공항에서 별 생각없이 짐 찾아 나가서 사람들 기다리는 홀에서 밤을 새우려고 나와보니 바로 밖이라 식겁한 적이 있어 여기 공항도 행색이 그리 훌륭하지 않았기에 간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바깥으로 연결된 듯 보였다. 우리 말고 한 백인 부부도 짐 찾는 벨트에 앉아 있길래 난 아예 바닥에 우리가 갖고 있던 담요를 깔고 달룡이를 눕게 했다. 나도 정신이 없었지만 둘다 쓰러져 있으면 가드 같은 사람이 와서 나가라 할까봐 론리 플래넷 아프리카편을 펼쳐 아침 6시까지 책을 읽었다. 이집트에서도 읽었던 내용이지만 역시 현지에 와서 읽으니 위험함이나 암울함이 훨씬 리얼해졌다. 
6시반까지는 버티려 했지만 나도 너무 힘들고 해서 결국 6시10분쯤 달룡이를 일으켜 세워 baggage claim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택시 서비스 데스크가 보여 두군데에서 쇼부를 치다 1200 케냐 실링에 가기로 됐다. 1200실링이면 대략 12유로라고 계산하면 얼추 맞아 환산은 쉬웠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20불정도라고 하던데 15불 정도니 괜찮게 가게 된듯 하다. 차도 일본에서 직수입한 중고차인 토요타 야리스였는데 꽤 새차였고 일본 내수용 내비까지 달려있는 풀옵션이었다 ㅋ

여긴 아프리카였지만 날씨는 후덥지근 하긴 커녕 너무 추워 에어컨도 꺼달라 하고, 왠지 차도 마음에 놓이고 업체도 마음에 놓여 나도 정신을 잃고 곯아 떨어졌다. 

차에서 잠이 든지 한참이 지난것 같아 눈을 떴지만, 차는 극심한 정체에 멈춰 있었다. 얼마나 왔는지 감도 안 오고 시간을 보니 7시가 한참 넘었다. 운전수한테 얼마나 남았냐 하니 이 정도면 자기도 모르겠다 했다. 정체가 한국의 정체같은 것은 레바논에서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여긴 그정도가 아니었다. 차는 10분이 지나도 1미터도 못 가고, 출근 시간에 늦을 것 같은 사람들은 KBS (Kenya Bus System)이라고 적힌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고. 우린 결국 한시간이 더 걸려 8시가 됐지만 건물 5개 정도 지나 온 듯 했다. 결국 내 비싼 해외 자동 로밍 폰으로 기숙희 씨한테 상황을 설명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길래 일찍 출발하라 했자나요".... -_-;;
막히면 1시간 걸린다는 거리를 약속시간 2시간 반 전에 출발하면 됐지 대체 얼마나 더 빨리 나오라는 것인지. 상황이 답답하다보니 나도 짜증이 났지만 어쨋건 약속을 못 지킨건 우리 사정이니 사과를 하고 오늘은 시간안에 가긴 글렀으니 내일 출발하는 사파리에 합류하기로 하고 시내에 비싸지 않은 숙소를 물어 그나마 싸고 괜찮다는 680 호텔로 행선지를 바꿨다. 내일 가기로 한 것도 사실 매일 출발할 수 있었으면 밤비행기로 꼴딱 새고 오는 사람들에게 다음날도 있으니 여유있게 가자고는 못 하고 도착 당일 바로 가자고 했던 여행사 분이 내심 서운했다. 뭐 그분 마음이야 시내에서 쓸데 없는 시간 안 버리게 했을 수도 있는 거지만 암튼 그랬다.
차는 결국 그러고도 한시간이 더 걸려서 30분이면 갈 거리를 장장 3시간 반만에 나이로비 시내에 들어와 호텔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됐다. 기사 말로는 어제 비가 와서 많이 막힌다는데.. 살다살다 이런 정체는 처음 봤다. 봉사료에는 보통 인색하지만 3시간 넘게 운전을 해준 기사가 고마워 300실링을 팁으로 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680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로비 분위기는 시장같은게 참 오묘했다. 왜 보지도 않은 영화 호텔 르완다가 생각나는 것일까.
암튼 아파서 꺽꺽대며 울기 시작한 달룡이를 로비에 앉혀놓고 난 프론트에 가서 가격과 방이 있는지 물어보니 다행히 6500실링에 방이 있었다. 가격보다도 지금 상태에선 뭄을 뉘울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방을 달라고 하니 영수증 같은 종이를 끊어주고는 옆에 창구에 가서 계산을 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
신용카드는 5%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해서 그것도 추가해서 내고 방 키를 받아 올라가 방을 살펴볼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바로 쓰러져 버렸다. 몇시간 후 깨어 찬찬히 살펴 보니 방은 더더욱 호텔 르완다가 생각났다. 나이로비의 가장 중심에 있는 듯한 호텔 앞엔 큰 길이 있는데 방음이 안되는 것은 당연하고 100불 가까이 하는 방에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ceiling fan같은 운치있는게 아니라 tv 위쪽 벽에 대충 매달려 있고, 더운 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이, 아 이제 진짜 아프리카에 왔구나 싶었다.

나이로비는 그래도 동아프리카의 중심이라 들었기에 그래도 중동도 돌고 온 우리니까 대단한 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 달랐다. 뭔가 비어있는 듯한 이 곳이 시내 가장 중심지라니 이상했다. 여행사 분한테는 호텔로 전화달라 해서 비싼 로밍폰 대신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내일 출발하는 것도 선불로 내야 한다며 지금 바로 줄 수 있느냐 물었고 은행가서 atm으로 찾아와야 한다고 했더니 그럼 4시쯤 호텔로 찾아갈테니 돈을 찾아놓으라 해서 알았다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달룡이는 꿈쩍도 못 하고, 나 혼자 나가서 돈도 찾고 아무것도 못 먹었느니 물이라도 사오려고 나갔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무서워 보이는지. 나이로비를 Nai-robbery라고 할 정도로 강도가 많다고 아침에 책에서 읽어서 그런지 곳곳에 무장 경찰들이 서 있는데도 도저히 그 큰 목돈을 찾아 들고 올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게다가 해외 atm카드는 Barclay만이 믿을만 하다고 들어 바클레이 은행을 찾을려고 하니 근처에는 안 보이고 두 블럭 떨어진 곳에 있는데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결국 물만 사서 돌아오고, 다시 은행을 가보려고 나갔다가 쫄아서 그냥 돌아오기를 두번이나 더 하고도 실패.
나중에 알고보니 이 공포감도 말라리아 약의 부작용 중 하나라고 하니 말라리아 예방약, 진짜 무섭다.


이젠 시간도 다가오고 어쩔수 없이 마지막으로 나가려 했는데 달룡이가 아무래도 지금 이 상태로는 내일 아침에 사파리는 무리일 것 같다고 했다. 하룻밤만에 호전되면 좋겠지만 일어나 앉기도 힘들 정도로 어지럽다니, 내가 보기에도 며칠은 몸을 추스려야 할 것 같은데 난 여행사쪽에 해놓은 약속이 마음에 걸렸고 결국 달룡이가 직접 통화를 해서 말라리아 약 얘기를 하며 양해를 구했더니, "그거 절대 예방용으로 먹으면 안된다"며.. 몸만 힘들고 부작용에 고생을 해서 현지 교민들은 절대 안 먹는다고 얘기를 하셨다.... 약이 독해 나중에 걸리고 나서 먹는게 낫지 예방용으로 먹지 않는다는 정도니 우린 난생처음 먹고 힘든 것은 당연했나보다.


그분도 많이 아파보셨는지 바로 사정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했다. 우린 인터넷에서 본 한국 식당에서 하는 민박 집을 봤는데, 거기서 며칠 한국음식이라도 먹으면서 몸을 추스리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전화 좀 해주실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해주셨다.

나도 당장 돈을 안 찾으러 가는 것이 마음에 놓였고, 달룡이도 내일부터 그 몸으로 사파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다시 용기를 내어 밖에 나가 저녁으로 먹을 꺼리를 찾다가 프라이드 치킨집이 보이길래 들어가 테이크 아웃을 해서  나이로비에 온 첫 끼로 치킨을 먹었다. 기름이 이상한 건지 약간 떫은 맛이 나는 일반 식용유는 아닌것 같은데 암튼 진이 빠져 배도 안 고팠지만 대충 먹고 달룡이는 비상용 쌀을 라면포트에 끓여 죽을 쒀 먹었다.

나이로비 시내는 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고 횡해지는데, 이런곳을 새벽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을뻔 한 것을 생각하면 꽤나 오싹했다.

카이로 떠나는 중


사실 국적기라기엔 좀 별로인 이집트 항공. 그래도 제일 쌌고 직행이었다

드디어 케냐 나이로비 도착

가방 찾는데서 두시간 넘게 찬바닥에 누워있다 나와 택시 타는 중. 아프리카라고 덥기는 커녕 너무 추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뻥뻥 뚫리고 좋았는데 30분 거리를 3시간이 걸리니.. 너무 지쳐 사진도 없다

six eighty호텔에 도착해서 방에서 보는 나이로비 마치 벌판에 건물 몇개 세운 느낌이다.

하루종일 저 자세 유지한 달룡이
사진이 너무 좋게 나왔는데...

케냐는 물가가 정말 비싸다. 생수도 1리터에 돈 천원 하고, 택시도 비싸다.

밤이 되니 상당히 차분해 지는 나이로비.

빠른 쾌유를 빕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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