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10 더블린의 클래식한 극장 & 독특한 이름의 Pig's Ear 레스토랑

우리의 저렴한 시내 중심 호텔 Russel Court Hotel은 고맙게도 이 가격에 아침도 포함이라 대단히 할 것은 없었지만 늦장을 부리지 않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일랜드 역시 아침은 소중히 하는지 영국식 아침을 서빙했다. 오늘은 큰맘먹고 영국식 순대라 할수 있는 블랙 푸딩도 시켰다. 특별한 맛은 없다만 그리 거슬리는 맛도 아니라 하나 더 시킨다고 돈이 붙는 것도 아니고 딱히 안 시킬 이유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밖을 활보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어 1층 로비에서 인터넷을 했다. 여기 호텔은 다 좋은데 우리 방에서 와이파이 시그널이 너무 약했다. 카페트 바닥에 엎드리면 간신히 한칸이 뜰까말까한데 그것마저도 시그널이 자꾸 숨었다. 저녁시간이 되니 이브닝 드레스 입으신 분들께서 술잔을 들고 다니며 파티를 즐기셔서 우리가 내려가 소파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기엔 조금 어려움이 있어 아무도 사람이 없는 아침시간에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1층 로비는 사실 방보다 분위기도 좋아 왠지 고급호텔에 온것 같고 안테나도 빵빵하게 다 뜨는데 문제는 아침시간엔 환기한다고 창문을 다 열여놔 너무 추운것만 문제였다.

오늘은 기네스 공장 구경을 갈까 심히 고민하다가 절대 싸지 않은 입장료에 무릎을 꿇었다. 모름지기 맥주공장 투어는 자기네 홍보 상품인데 칼스버그도 그렇고 돈을 받고 입장을 시켜 준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심히 마음에 안 들었다. 예전에 St. Louis에서 무료로 너무나 만족스럽게 한 버드와이저 공장 투어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암튼 나의 이상한 고집으로 유료 공장 투어는 안 하기로 하니 더블린 시내에서 할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시내를 한 바퀴 돌다가 가장 중심거리라 할 수 있는 O'Connell St.에 있는 꽤 전통이 있어보이는 Savoy극장의 상영표를 체크해보니 Blindside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외국은 진작에 상영했지만 이곳은 이제야 하는 영화라는게 조금 돈이 아까웠지만 미국에서의 예상치못한 흥행으로 보고 싶던 영화라 matinee할인으로 7유로에 표를 샀다. (일반시간에는 9유로)

영화 시작 시간도 남고, 근처 대로변에 있는 Fish & Chips전문 가게가 평이 좋길래 점심을 먹었는데 매우 실망스러웠다. 가격이 물가비싼 아일랜드에서 비싼 편은 아니라는게 위안이었지만 맛이 평이하다 못 해 며칠전 영국 휴게소에서 먹은 것 만도 못했다. 암튼 점심 먹고 극장을 들어가니 극장은 밖에서 보는 것 보다도 더 클래식 했다. 복도에는 오래된 가죽 소파가 놓여있고, 화장실 소변기도 1자로 벽처럼 붙어있는 마치 예전 우리나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보던 스타일인게 오히려 놀라웠다.
상영관역시 클래식 그자체로, 요즘은 보기힘든 비스타디움식 좌석이 엄청 넓게 펼쳐져 있는게 멋졌다.
예전 마케도니아에서 갔던 극장이 살짝 이런 형식이었는데 거긴 그냥 오래된 극장같은 느낌이고 이곳은 마치 영화제라도 할 듯한 어딘지 모를 멋이 있었다.
영화는 기대보다는 별로이고 그냥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는데, 역시 기대는 영화의 최대의 적이었다. 갈곳없는 흑인을 백인가족에서 키우며 프로 풋볼 선수로 만드는 내용이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꼭 순수한 마음에서 키워줬다 하기엔 애매했지만, 쓸데없는 오지랍도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같을수 있다.

이제 유럽도 며칠후면 끝이고 슬슬 미지의 땅인 아프리카를 준비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지났는데 차일피일 책 사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더블린에서도 영화에 나올법한 분위기 좋게 오래된 서점에서 론리플래넷 편을 만지작 했는데 문제는 책이 2007년판이었다. 전체 대륙이 나온것은 이 서점에는 2007년판이 가장 최신판이고,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등등 지역별로 나온 책은 더 최신판이 있었지만 다 사면 가격이 비싸고 부피도 컸다. 보통 2-3년이면 개정판이 나오니 고민끝에 영국에 가서 찾아보기로 하고 서점을 나왔다.

저녁은 오랜만에 조금 좋은 레스토랑을 가기로 했다. 여기저기에서 좋은 평을 받은 Pig's Ear라는 독특한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고맙게도 early bird special이 있어 저녁을 조금 이르게 먹으면 상당히 좋은 가격에 먹을수 있었다.
작은 섬나라라 그런지 아일랜드는 영국보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 패스트푸드 같은 것도 영국보다 1.5배는 더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레스토랑은 무려 저녁 얼리버드가 2코스는 19유로, 3코스는 23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의 타이트한 버젯에는 싼 음식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싼게 없는 아일랜드에서 멀쩡한 레스토랑 가격치고는 매우 저렴했다.
어차피 얼리버드는 5시반부터 6시반까지 밖에 없으니 배고프지 않아도 일찍 먹어야 해서 사전 예약은 안 하고 5시반에 갔더니 자리가 있었다.  Irish의 전통음식을 모던하게 바꾼 음식이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아이리쉬나 잉글리쉬나 스코티쉬나 비슷했다. 살짝 양이 아쉬웠고 재료비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거닐다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먹는 공간도 분위기가 괜찮았고 음식도 맛있던 러셀 코트 호텔. 이곳은 낡은 방만 조금 문제인데, 가격이 모든걸 용서해준다.



강가에 색색 건물들이 마치 암스텔담 같았다.

강을 건너 중심거리인 오코넬 스트리트에 있던 시장. 여느 나라나 시장은 참 비슷하다

좋은 평들에 비해 너무 별로였던 피쉬&칩스
뒤에 보이는 것은 매우 퓨처리스틱하게 생긴 자전거인력거
클래식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가게 된 사보이극장

상영관도 곧 영화제 하나 열릴것 같은 분위기. 화질이나 음질도 특별하진 않았지만 준수했다.

아일랜드 엽서에서 자주 볼수 있는 이곳의 상징같은 타운하우스의 다채로운 문들
영화에 나올듯 법한 클래식한 서점.
저녁을 먹으러 간 Pig's Ear레스토랑은 좁은 문으로 올라가면 2층에 있다.

녹색 풀떼기가 아일랜드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던 나의 블랙푸딩과 감자가 있던 애피타이저
이건 달룡이것으로 크랩살 스프레드
그리고 메인들. 양이 약간 부실하지만 맛과 가격 모두 훌륭. 하지만 왠지 1만원에 정승같이 먹던 중동이 살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