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9/10 잘못 찾은 피렌체 기차역

오늘 피렌체에서 밀라노 가는 기차는 아침 11시40분 출발이었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피렌체 SMN역을 여유롭게 나와 기차 타기 전 아점을 먹기 위해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줄이 너무 길어 먹기를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Spizico를 가서 피자를 샀다. 은근히 시간이 30분밖에 안남아 피자를 to go해서 나와 기차역을 걸어가는데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앗! 우리가 타는 곳은 이 역이 아니다!!
기차표를 예매할때 다른 기차는 고속이라 빨리 가는 대신 가격이 비싸 우리는 밀라노까지 세시간 넘게 걸리는 가장 싼 기차를 예매했는데 그 기차역이 피렌체 시내에 있는 중앙역인 SMN역이 아니었던 생각이 이제야 비로소 갑자기 들었다. 심지어 어제 기차역을 답사할때도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인데 부랴부랴 프린트한 e티켓을 꺼내보니 역시나 Refredi역이란 다른 곳이었다. 남은 시간은 20분도 안되는데 터진일이라 잠깐 고민하다 우선 근처에 보이는 tourist information 센터에 들어가 리프레디역의 위치를 물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멀지는 않아 여기 앞에서 버스타면 10분이면 간다고 했다.
택시를 타야하나 망설이다가 유럽의 비싼 택시비에 쫄고 10분이면 간다는 얘기에 용기를 얻어 버스 출발시간이나 알아보러 갔더니 마침 바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올라탔다. 휭휭 달려주면 좋지만 버스는 천천히 동네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다가오고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기사에게 물어보니 다음다음에 내리라 하여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멈춘곳은 역 앞이 아니었다!!
버스는 리프레디역으로 바로 안 가고 리프레디역을 가는 무료 셔틀 버스 정류장앞에 우리를 내려주는 것이었다. 운전수는 당연 영어를 못 하고, 한 아줌마가 더듬더듬 설명을 해주는데 이미 시간이 5분밖에 안남은 우리는 눈앞이 컴컴했다. 자기도 간다고 자기를 따라 타라는 다른 아줌마를 따라 어쨋건 버스에서 내렸다.

이 기차를 놓치면 이 곳이건 피렌체 중앙역이건 암튼 오늘 안에 가는 기차를 정가를 내고 타야 가야했다. 이미 오늘 예약되어 있는 호텔도 있고, 내일 아침에는 한달전부터 예매해둔 최후의 만찬도 있고 게다가 내일 오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로 가야한다. 시간 다되어 정가를 주고 사면 금전적인 손실도 손실이거니와 다시 해야 하는 삽질로 눈앞이 깜깜해왔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히 셔틀 버스는 우리가 기다리자마자 바로 왔다. 하지만 이미 버스안에 있을때 시간은 11시40분을 넘어버렸다. 이제는 기차가 연착되었을 기적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암튼 달룡이에게 버스가 역 앞에 멈추면 무조건 전속력을 다해 달리자고 얘기를 해놨다. 버스는 5분을 더가 45분에 도착을 했고 우리는 차 문이 열리자마자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출발한 것처럼 나오는 전광판에서 어쨋건 플랫폼을 확인하고 짐을 들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지하로 층계가 있어 내려갔다 다시 플랫폼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역은 우사인 볼트와 같은 마음으로 뛰는 우리도 몰라주고 엄청 멀기만 했다. 숨을 헉헉거리며 지하로 내려갔다 다시 지상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기차는 없었다..
이미 10분은 족히 더 지났으니 기차가 갔어도 이상할게 전혀 없었다. 거의 울상이 되어 조금 더 올라가는데 아까는 각도에 따라 하늘만 보였던 것이고 무려 기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올라가던 나는 달룡이에게 기차가 아직 있다고 환호를 지르고 우린 더욱 힘을 냈지만 40대 중반은 된것같은 우리의 신체나이는 뛰어도 뛰어도 기차에 가까이 가지 않고 꼭 treadmill에서 뛰는것 같았다. 게다가 달룡이가 가방을 끌고 뛰다 가방이 뒤집히며 철로 아래로 가방이 떨어졌고, 그 와중에 난 철로를 내려가 가방을 줏어와야 했다. 역무원이 우리의 처절한 몸부림을 봤는지 어쨌건 우린 가까스로 기차에 몸을 실을수 있었다.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할수 없던 순간이었다. 트렁크에 백팩에 하필이면 피자는 사가지고 피자까지 들고 정말 처절하게 달린 보람이 있었다. 

3시간반 후 밀라노에 내려서 보니 달룡이의 트렁크는 아까 철로에서 구른 덕분에 맛이 갔다. 핸들은 휘어 잘 들어가지 않고, 무엇보다 바퀴 한개가 아작이 났는지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전 까지는 내 가방이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상태가 더 나빴는데 한순간의 나락으로 내것보다 더 나빠졌다.

어쨋건 우여곡절끝에 도착을 한 밀라노. 어차피 중요한것은 내일 보러 가는 최후의 만찬과 오후 비행기로 오늘은 계획한 일정이 전혀 없었다.
호텔에 짐을 두고 두오모 근처를 나가 이제야 론리플래넷 서유럽편을 구입했다. 책은 없으면 불안하지만 살때는 5만원정도 하는 가격때문에 언제가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이태리는 와 봤던 곳이라 치지만 앞으로 가는 스페인이나 포루투갈은 처음이라 책은 있어야 할것 같았다.
책을 사면서 오늘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밀라노의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책을 한권 찾아 서점에서 서서 훑어봤다.
책을 보다보니 한 식당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일식집인데 일본 슈퍼마켓에 들어있어 가격도 착하고 맛있다고 하는게 구미가 확 땡겼다. 게다가 오늘은 에너지 소비를 너무 많이 한 탓에 한식이나 일식 같은게 먹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호텔 앞까지 지하철을 타고와 반대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한번 꺽어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었다. 포포로야라는 곳이었는데 똑같은 이름의 식당이 큰 길을 두고 양쪽에 있었는데 우린 좀 더 허름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고, 들은대로 일본 슈퍼가 먼저 나오고 그안에 작은 식당공간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길 반대쪽에 있던것은 좀 더 업스케일로 만든 레스토랑이 아닐까 싶었는데 암튼 우린 우리가 찾던 곳을 왔으니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공간이 좁아 합석이 기본이라 우리도 두 여자분 옆에 앉았다.

모두 맛있어 보이는 메뉴를 보며 뭘 먹을까 하는 행복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옆에 같이 앉은 분들이 한국인이냐면서 반갑게 말을 건냈다. 어쩌다보니 한국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분들은 유학생 출신으로 지금은 밀라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며 여긴 관광객들이 잘 모르는 곳인데 어떻게 찾아왔냐며 오히려 우리를 신기해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맛집으로 정평이 자자한 곳이라는데 심지어 한국 돌아간 분들중 이곳을 제일 그리워 하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뎀푸라우동정식과 그분들이 강추해준 치라시를 시켰는데 정말 맛이 끝내줬다. 추천받은 치라시는 양도 많고 완전 입에서 살살 녹았다. 뎀푸라 우동 역시 푸짐허니 국물이 그동안 먹던 짝퉁 일식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게다가 단골인 그분들께서 주방장께 잘 말씀해줘 깍두기까지 서비스로 먹을수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쌓인 스트레스와 피곤함이 싹 날라가는 최고의 저녁이었다. 가격도 12-13유로 정도로 런치스페셜 가격도 아닌 것을 생각하면 매우저렴했다.  
우리가 만약 다시 밀라노에 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곳의 치라시를 먹으러 오는 것일거다. 
그저그렇다던 우나쥬를 시킬뻔 하던 나에게 정말 맛있는 치라시를 먹게 해 준것도 모자라서 내일 꼭 가보라며 줄서서 먹는 유명한 판자로티라는 이태리의 만두집 같은 곳도 알려준 홍익인간들이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모르고 행복했던 피렌체 'SMN'역 앞에서

이렇게 뛰어본게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모를만큼 미친듯이 뛰어 기적적으로 기차에 올라탄 승리자들.

다시 도착한 Milano Centrale역


우리를 인도해준 레스토랑 가이드

갤러리아
유럽 여기저기 많이 보이던 투싼 광고
길에 쇼핑백 들고 가던 아줌마한테 물어 간 Abercrombie & Fitch매장. 미국에 있을때 갔을때는 이런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는데.. 
옷가게인지 클럽인지 일하는 선남선녀들이 쉴새없이 춤을 추고 있고 조명도 어두컴컴하다

유럽에서 먹은 최고의 일식집 포포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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