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6/10 서지 못해 부산까지 갔단 얘기가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투스카니까지 쉬지 않고 달린 하루

오늘은 어제 말한대로 차를 빌려 이틀간 타다가 피렌체에서 리턴을 하기로 한 날이다. 대중교통비가 싸지 않은 이태리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거나 렌트카를 하는 거나 가격차이가 안나고 중간에 여기저기 마음대로 들렀다 갈수 있어 예약을 해 뒀다.
보통 one way로 차를 빌리면 drop charge가 차 렌트비 만큼 나오거나 오히려 더 비싸서 이것때문에 렌트카를 a에서 b로 가는 교통수단으로는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유럽의 Hertz는 같은 나라안에서만 돌려주면 one way fee가 전혀 붙지 않았다. 그래서 일일요금은 조금 다른 곳보다 비싸도 총 금액을 따져보면 말도 안되게 가장 싼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빌리기로 한 소렌토부터 플로렌스까지의 2박3일 렌트비도 80유로정도로 기차 대비 매우 쌌다. 유럽이 다 그렇듯 오토는 미친듯이 값이 비싸고 큰 차 밖에 없어서 어쩔수 없이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수동으로 예약을 하게 되었다.

어제 봐둔 렌트카 사무실까지 짐을 끌고 가서 예약한 차를 찾았다. 동급의 차로 sixt는 피아트500을 빌려주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차를 기대했건만 우리에게 할당된 차는 피아트 판다라는 차로, 아주 작은 카렌스 같은 해치백보다는 mpv같은 모양의 소형차였다. 렌트카 직원이 차를 지하 차고에서 갖고 올라와 우리 앞에 세워 줬는데 살짝 지하차고로 연결되는 내리막 길에 걸터줬길래.. 양해를 구하고 조금만 평지로 빼달라고 했다. 살짝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오랜만에 수동을 해서 그런다고 하니 군말없이 해줬다.
그러고 드디어 나 와 팬다의 사투가 벌어졌다.

수동운전이라고는 5년전 신혼여행때 차 빌렸다가 도저히 할수 없어 20분만에 다른 차로 바꿨던 경험이 마지막 경력이었고, 오늘을 위해서 준비를 한 것은 그저께 지식인에서 읽은 한줄. 'rpm을 올린후 기아를 넣으면 시끄럽긴 하지만 출발은 꼭 합니다'라는 것 뿐이었다.
시동을 켜고, 발을 정위치에 넣고, 들은대로 악셀을 밟아 rpm을 올린후 기아를 1단에 넣으니 당연히 차는 꿀렁꿀렁하다가 시동이 꺼졌다. (내가 글을 잘못 이해했던 건데 사실 rpm올리고 그 순간에 기어을 넣는 건 당연히 차에 매우 안 좋을 거다.. 이 자리를 빌어 판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_-) 

렌트카 사무실 바로 앞에서. 직원이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계속 삽질을 하면 차를 취소할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무엇보다 앞섰다. 오늘 숙소 예약해 둔 곳도 있고 갑자기 다른 교통편으로 간다면 돈도 돈이고 무한 삽질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혼신을 다해 rpm을 더 올려 거의 3000까지 올린후 기어를 퍽 집어넣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꺼질듯 꺼질듯 하다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빌빌 거리며 가기 시작한 우리차. 그다음 난관은 사무실이 있던 골목에서 큰 길로 턴을 해서 나가는 것 이었는데.... 차들이 꽤 많이 오지만 멈춘 후 다시 출발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에 창문을 내리고 굽신굽신 미안하다는 제스츄어를  몇번에 걸쳐 한 후 휙 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렌토 시내를 다 통과해서 달려 나폴리 방향으로 올라가다 고속도로를 타야한다. 이탈리아에 안 그런 곳이 있겠냐마는, 유난히 로타리는 왜 이리 많게 느껴지는지.. 하지만 정말 기적적으로 한번도 완전히 멈추지 않고 지옥같은 소렌토를 벗어날수 있었다. 한 번 크나큰 고난이 찾아왔었는데 내 앞에 차가 갑자기 길에 서 버린 것 이었다. 양방향이 한 줄 씩인 동네길이라 설 수 밖에 없었지만 비상등 켜고 다른방향 차선으로 추월을 해서 갔다. 소렌토를 이렇게 기적적으로 벗어난 다음 나폴리로 가는 길은 절벽으로 된 해안가를 20km정도 달려가는데 우린 아름다운 경치를 느낄 수도 없을 만큼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길이 미친듯한 언덕길로 오르막 내리막을 계속하고 주말이라 그런지 차는 왜 이리 많은지, 어쩔 수 없이 몇 번 섰다가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끼익-하며 출발을 했다. 한 번 설 때 마다 평균 세번에 걸쳐 시동을 꺼뜨린 후에야 다시 출발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피렌체로 주욱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탈 수 있었다. 톨게이트에서의 마지막 고난을 끝으로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는 마지막 단인 5단에 넣고 그냥 쭉 가면 되니 심지어 한두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아까의 악몽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가는 중간에 로마에 내려 바티칸을 들르려 했던 헛된 꿈은 접고 심지어 휴게소 한번 서지 못하고 피렌체까지 무조건 달리기만 했다. 결국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다 참고 네다섯시간을 달려 피렌체가기 30분전쯤인 아울렛이 있는 동네인 arezzo근처까지 갔다. 바티칸도 못 갔고 밥도 화장실도 다 참았지만 아레쪼 아울렛은 가야한다는 굳은 의지속에 고속도로를 나와 구찌와 페라가모등에서 꽤 쏠쏠히 건진 기억이 있던 The Mall로 아까와 같은 서지 않고 가는 기술로 기적적으로 아울렛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직도 난 정신이 하나도 없고 왠지 부들부들 떨렸지만 암튼 이 곳 까지 왔다는 게 완전 놀라웠다. 
 
다행히 고생한 보람이 있게 몇 개를 잘 건지고 이제는 호텔을 찾아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오늘 잘 호텔은 여기서 대략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동네에 예약을 해 뒀는데 문제는 주차장에서 벗어나는 것 부터 시작되었다. 차를 후진으로 빼야하는데 도저히 기어를 후진으로 넣는 법을 알 수가 없었다. 5단 옆이 R이긴 한데 그냥 내리면 당연 안 내려가고 예전에 빌렸던 골프는 기어를 누르면 R로 들어갔는데 얘는 그것도 안되었다. 매뉴얼도 없고 결국 차를 밀어서 주차장에서 뺀 후 굉음을 내며 다시 출발해 달려갔다. -_-
차는 출발할때마다 비명소리를 냈지만 이제는 나도 적응이 되었는지 많이 꺼뜨리지도 않고 출발하는데 꽤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멈췄다 출발하는 것은 두려운 일 이었다. 호텔이 호수가에 붙어 있는 산장이라 그런지 내비게이션에 넣고 간 주소에 존재하지를 않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을 하다 어디라도 가서 물어보자 하며 가던 길에 기적적으로 호텔의 광고판을 보고 찾아가서야 오늘 우리의 기적같고 악몽같던 하루가 끝났다. 결국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호텔에 와서야 간식이라도 주서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차는 아직도 하루가 더 남았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날 이었다.


미처 사진도 찍지 못하고 엉겁결에 출발한 후 소렌토 벗어날때에야 비로소 사진이라도 찍을수 있었다

나른 바짝 쫄게 만들었던 절벽 옆의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던 소렌토-나폴리 구간. 엄청 아름다웠다지만 난 기억이 없다..
드디어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고 여유가 생겨 달룡이가 트렁크에 있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러 뒷자리로 갔다 실패했다
소렌토부터 한번도 안 쉬고 벌서 아레초
그래도 아울렛은 가야한다며 오게된 The Mall의 주차장
이게 우리가 타고 온 피아트 팬다
달룡이가 밖에서 밀어줘서 드디어 주차완료!

드디어 하루가 끝나고 헤매다 도착한 Hotel Del Lago. 산장같은 곳인데 다 좋았는데 너무 추워 1박만 하고 다른 곳 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