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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라면을 사러 한국 슈퍼를 찾아 가기로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한인타운이라 할 만큼 교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은 교민들이 하는 도매 옷가게 겸 공장의 밀집 지역이라는 아베자네다와 원조 한인타운이라 하는 백구지역이라고 한다. 그 중 아베자네다는 지하철이 미치지 못해 찾아가기 힘들것 같아 우리는 백구 지역을 가 보기로 했다.
예전 109번 버스의 종점이었기에 백구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 지역은 지하철로 쉽게 갈수 있어 우리는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나오는 Plaza Italia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을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은 남방구에서는 가장 오래된 시스템으로 현재 6개의 라인이 있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라인이 얽혀 있는게 아니라 1자 구조로 거의 다운타운이라 할 수 있는 Plaza de Mayo근처에서만 만나고 거기서부터 다른 방향으로 손가락처럼 뻗어있는 형식이라 어디를 가든 다른 노선을 타려면 다운타운을 가서 환승을 해야 했다. 차타고 가면 얼마나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Plaza Italia역이 있는 D선을 타고 열정거장 정도를 가서 다운타운에서 다시 E선으로 갈아타고 타고 12정거장을 가 Medalla Milagrosa역까지 가야했으니 한시간 정도의 여정이었다. Plaza Italia 지하철 역이나 지하철의 느낌은 역 이름때문인지 밀라노 쪽의 지하철이 생각날 정도의 수준으로 그리 깨끗하거나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번 타는데 비용이 1.1페소로 400원밖에 안 하니 고마웠다. 세계적으로 이란 테헤란만큼 싸면서 시설도 좋은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럽과 비슷한 환경에 400원이라면 충분했다.
지하철을 타고 쭉 달려 D 선의 마지막 역인 Catedral에서 내려 바로 E선으로 환승을 할까도 했지만 어차피 시내 온것 구경이나 하고 가자며 바깥으로 나가봤다. 역 밖으로 나가니 우선 역 이름이 뜻하듯 성당부터 보였다. 여기 있는 성당이니 뭐 나름 대단한 성당이겠지. 그러고는 독립 영웅을 그리는 탑과 그 앞으로 대통령 궁이라는 핑크빛 집 Casa Rosada가 보였다. 어제 Cabrera 레스토랑 근처에서 경찰관에게 카메라 조심하라고 주의를 받을 이후 우리는 카메라를 반드시 달룡이 배낭안에 넣어 놓고 필요시에만 꺼냈는데 우리가 있던 지역에 비해 매우 클래식하고 유럽스러운 다운타운은 위험할 틈이 없을 만큼 관광객들이 많아 우리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찍을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독립역사가 깃들여 있다는 광장과 대통령궁의 다운타운 볼거리는 가운데 서서 한바퀴 쭉 찍고 나니 다 봤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우리가 타야할 E선의 시작역인 Bolivar역으로 들어갔다. (Catedral역과 Bolivar역은 환승은 되었지만 거리가 있어 역 이름이 달랐다) 볼리바 역에서 탄 E선 지하철은 깜짝 놀랄 정도록 아름다웠다. 전등이 모두 백열등으로 몇십년전에 나온 지하철이 그대로 달리고 있나 본데 노란 백열등과 사람들의 손에 곱게 반질반질 닳은 나무 의자들의 그 느낌이 너무나 클래식하고 아름다웠다.
12정거장을 가서 내린 Medalla Milagrosa역을 나가 출구 앞 길인 에바 페론 길에서 오른쪽으로 꺽으면 다음 신호등에 바로 한인타운이 있는 Carabobo길이 나온다. 아직은 한국 간판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고, 이 길에서 왼쪽으로 꺽어 걸어가니 한국 간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 간판들의 모습이 그리 좋지 않았다. 교민사회야 오래된 곳들이 많아 시카고 로렌스거리나 런던의 뉴몰든의 하이 스트리트나 기본적으로 오래된 낡은 간판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여기는 더욱 심했다. 마치 예비군 훈련장에서 조성해 놓은 가짜 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한국 간판들도 낡았고 길에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가게들은 굳게 닫혀 있어 장사를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여기서 5-6 블록은 걸어가야 한인타운 중심부라니 그쪽가면 좀 나아지겠지 싶긴 했지만 암튼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계속 걸어가도 한국 간판이나 사람들이 많이 늘지는 않았고 길에는 현지 청년들이 3-4명씩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아무리 봐도 떨 피고 앉아 있는것 같은데 대낮이라도 꽤나 섬짓했다. 다행히 중심부를 가니까 가게들도 많이 늘고 청년들은 줄어들었다. 우린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라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이미 조사해 온 곳 중 가장 괜찮아 보이던 한국관이란 식당을 찾아갔다. 카라보보 거리에서 Saraza를 만나 오른쪽으로 꺽으면 바로 있었는데 이곳 역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늘이 노는 날은 아닐텐데.. 벨이 보여 누르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 그렇게 3-4번 누르니까 그제서야 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줬고 들어간 식당은 평일 낮인데도 꽤 북적거렸다. 한산한 바깥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알고보니 슈퍼 말고는 치안문제로 대부분 문을 닫아놓고 영업을 했다)
몇명인지 묻지도 않고 빈자리에 앉히더니 주문을 받지도 않고 우선 고기가 나오고 반찬이 깔리기 시작했다. 여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불고기와 갈비가 함께 나오고 반찬도 열가지 정도 깔리는게 굶주린 우리에겐 너무나 맛있어 보였다. 조금있다 불이 들어오고 고기를 숯불에 올려놓고 익히는 데 계속해서 반찬이 들어왔다. 밑 반찬 수준의 김치나 콩나물 같은 것만 많이 나와도 우리에겐 충분할텐데 거기에 된장찌개, 부침개, 족발, 만두,조기 구이, 비빔국수 등 요리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스무가지 정도 되는데 입이 딱 벌어지고 진수성찬도 이런 진수성찬이 없었다. 그렇다고 고기가 부실한 것도 아니다. 소고기의 나라답게 불고기면 불고기, 갈비면 갈비 모두 숯불에 구어 맛이 더 끝내줬고, 이 마저도 제한된 양이 아니라 원라는대로 무료 리필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먹고 우리나라돈으로 한사람당 만5천원 정도인 50페소다. 감히 세계 한국식당 중 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포함해서. 고기도 맛 있고 반찬도 맛있는데 고기를 욕심껏 추가까지 해서 먹다보니 상대적으로 밑반찬들이 너무 남았다. 슬쩍 다 먹고 치우고 있는 옆테이블을 보니까 남은 반찬은 모두 엎어 버리던데 이 맛있는 반찬을 버린다니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밥을 다 먹고 달룡이가 사장님한테 가서 우리는 여행객인데 반찬이 너무 맛 있어서 남은 반찬 좀 싸갖고 가도 되냐고 물었는데 사장님은 어디서 왔냐며 너무나 반가워 하셨다. 몇개월간 여행중이라고 하자 음식이 맛 있냐며 빈 봉투를 주시는 대신 김치와 잡채 등 반찬을 한가득 싸 주셨다. 너무나 고마워 어찌할 줄을 모를 정도였다.
한국에서 먼 만큼 외지인은 유입이 적은지 근처 슈퍼에서 라면을 사면서도 그곳 사장님도 다른 곳에서 왔냐고 물으셨다. 여행중이라는 말에 또 한번 놀라시고 멀리까지 왔다며 매우 신기해 하시는 것을 보니 우리가 멀리 오긴 왔나보다 하는 생각과 아직 여기는 한국사람이라는 이유 만으로 반가워 하고 때뜻하게 맞아주는 정이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라면은 거의 세계 공통 가격인 1300-1500원 정도였다. 헝가리에서 충격적인 2500원을 본 이후 영국이 좀 쌌고 그 외에는 모두 비슷했다. 한국보다 2배 했지만 그 어떤 나라에서도 1500원으로 한끼를 먹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저렴히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도 달랠수 있고, 특히 밤에 다니기 어려울듯한 남미에서는 필수 음식이었다.
라면 뿐 아니라 두부 등 저녁에 해먹을 장까지 봐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오늘은 이사를 가야해서 아침에 나올때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맡겨두고 나와 꼭대기층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가방을 찾아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길에 다니는 택시들은 불법영업들이 많아 왠만하면 콜을 해서 타고 다니라고 했는데 만약 길에서 택시 잡을 일이 있어도 Radio Taxi(콜택시)라고 써 있고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는지를 체크하고 타라고 했다. 같은 Palermo안이라 많이 멀지는 않았지만 번화가쪽에 더 가까이 있던 새 집 역시 레지던스였다. 이 곳은 전체를 호텔로 쓰는게 아니라 개인 소유의 아파트를 빌려주는 건지 건물 앞에서 4시에 만나기로 해서 우린 45분쯤 와서 기다리니 한 청년이 와서 우리를 맞아줬다. 이 청년이 주인은 아니었고 체크인 전문으로 와서 방으로 안내하고 키를 건내주고 주의사항, 주변 얘기등을 해줬다. 또 이곳의 특색은 전화기가 없는 대신 핸드폰을 충전까지 해서 빌려줬다. 아마 택시를 부를 일이 많은 곳이라 그런가보다. 아파트는 우리가 원래 있던 곳보다 훨씬 좋았다. 같은 스튜디오 구조였지만 집의 느낌이 매우 따뜻해 진짜 사는 곳 같았다. 우린 동네 야채 가게에서 파와 양파를 사서 한국관에서 얻어온 반찬과 장봐온 재료로 저녁을 맛있게 해먹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운타운의 모습. 하얀 건물이 나오자마자 보이던 성당
대통령 궁인 핑크(장미)빛 집 Casa Rosada. 에비타에서 노래 부드던것만 생각났다
핸드폰 사진이라 잘 표현이 안된 아름답던 지하철 조명
백구는 사진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비로소 한국관 들어와서야 카메라를 꺼낼 수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가득 나오는 불고기반 갈비반
진수성찬! 이 모든게 만 오천원! 나중에 요리 몇개와 찌개까지 더 나오는데 결국 공간이 없어서 음식위에 쌓아두고 먹었다
새로 이사온 집.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동네도 같은 Palermo인데 훨씬 활기차고 좋아졌다.
가운데 우뚝 높은 건물이 우리집 있던 곳
집 앞 야채가게. 박스째 세워 전시해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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