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3/10 모로코에 도착, 마라케쉬의 미로에 무릎을 꿇다

새벽에 공항 바닥에서 누워 대충 잠을 자다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서 보니 슬슬 체크인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도 부시시 일어나 줄을 서서 간단하게 체크인을 했다. 짐은 어제 택배로 많이 부쳐 겨울옷들을 치운 덕분에 가방은 하나만 부칠수 있어 둘이서 총 82파운드 들었다. 아무리 3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라도 대륙을 넘어 아프리카 땅에 가는데 둘이서 15만원도 안하니 싸긴 참 싸다.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반 정도 날아 도착하니 이제 아침 8시 반밖에 안 되었다. 유럽에서 워낙 편히 있던 덕분인지 흙먼지 나는 활주로에 내려 걸어서 공항 건물까지 들어가는데 꽤나 낯설었다.
영국에서 비행기 탑승할 땐 별도의 출국 수속이 없어 큰 느낌이 안 들었는데 모로코에 내려 무비자이긴 하지만 줄을 서서 도장을 받으니 오랫만에 외국 온 느낌이었다.

별 문제 없이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에 나와 우선 atm에서 현금을 찾았다. 공항은 크지는 않았지만 그물처럼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천정이 마치 이스파한의 기차역처럼 멋졌다. 돈을 찾아 버스를 타러 나오는데 택시 삐끼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사실 어제 밤새 공항에서 노숙한게 피곤하기도 하고 우리가 과연 마라케쉬에서 주소만 가지고 호텔을 찾아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2만원에 가까운 돈을 달라는 말에 두번 쳐다보지도 않고 시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실 지금까지 다닌 게 있는데 설마 호텔도 못 찾겠나 싶었다.) 우린 호텔이 정확히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른채 예약했던 booking에서 뽑은 지도 한장만 들고 시내로 향했다. 휑해 보이는 벌판을 몇십분 달리는데 옆에 오랜만에 낙타들이 보였다. 그런 와중 아저씨가 여기가 마라케쉬라고 내리라고 한다.
암만 봐도 변두리 같이 보였지만 개발도상국 나라에서 부촌의 상징인 KFC가 보이길래 내렸다. 이곳이 시내가 맞다면 지도상 호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모로코는 중동이지만 프랑스 물을 많이 먹어 알파벳도 잘 읽고 블랙홀인 중동어보단 조금 그나마 조금 이해가 가능한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내리자마자 어느쪽으로 가야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 바로 근처에 보이는 경찰에게 물어봤다. 개발도상국 오면 일반인들이 알려주는 길은 신뢰 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아 경찰에게 물어봤는데 주소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저 위를 가리키며 계속 가라고 한다. 고르지도 않은 길에 짐을 끌며 가도가도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라고 해서 가다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왼쪽으로 가라는데, 도대체 끝도 없고 답이 없었다. 과연 알긴 아는건지 결국 30분을 넘게 걸어가는데 미로도 이런 미로가 없었다. 당췌 왔던 길인지 알수 없을 뿐 아니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다른 중동국가에서도 이런적은 없었는데 택시도 제대로 들어올수 없을 것 같은 길을 돌고 또 돌고.. 햇빛은 쨍쨍 나니 땀은 미친듯이 흘리면서 한 7번쯤 물어보는데 옆에 한 젊은 놈이 안다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삐끼들에겐 당할만큼 당해서 그 상황에서도 되었다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헤멜만큼 헤멨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따라갔다. 불행중 다행히도 그 아이는 집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데, 도착한 그곳엔 제대로 된 간판도 없고 옆 대문과 똑같이 생긴 대문일 뿐이었다. 아무리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숙박시설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제대로 표식도 없이 찾아오라고 한다니 할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 아이는 우리에겐 돈을 받지도 않고 호텔측에서 얼마를 쥐어주는 것 같았다. 워낙 찾아갈수 없는 미로니 누군가의 안내를 받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길이 궁금하면 구글 맵에서 Riad el Faris를 찾아보고 지도에 나오는 길과 길 사이에 10배 정도 촘촘한 샛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딱이다)

오늘온 "리야드 엘 파리스" 호텔은 예전에 예약하려고 할땐 이미 객실이 없었지만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인해 이 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여행을 취소하게 되고 해서 우리에게 꽤 괜찮은 가격에 나온 곳이었다.
모로코의 대부분의 숙박시설이 그러하듯 Riad라고 불리우는 곳은 좋게 말하면 부티크 호텔, 그냥 말하자면 민박같은 시설이었는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지라 이곳의 시설도 천차만별이었다. 우리가 오늘 오게 된 곳은 가격도 80불 정도로 아주 싼 곳은 아니었고 주인 아줌마는 히잡따윈 잃어버린지 오래된 파리지엥같으신 현지인이셨다. 불어는 기본 영어도 잘 했다. 하지만 길찾기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우리를 기다리는 빈 방은 없었고, 거실같은 마당 공간에 앉아 차를 마시며 두어시간 방이 정리되길 기다려야 했다. 

야외에서 쓰러지기엔 아직 팔팔했는지 맨정신으로 두시간을 버티고서 방에 들어가서 쓰러져 오후까지 내리잤다. 
방은 이슬람 양식이 녹아있어 그런지 시리아나 이란에서 갔던 전통식 호텔들과 일맥상통하는 점도 많았는데 전반적으로 색체가 더 화려한 느낌이었고 화장실이 고풍스러우면서도 넓직하니 좋았다.

잠에서 깨어 주인 아줌마가 나름 표시해준 동네 지도를 들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바깥 구경을 나섰다. 시내에서 내려 호텔까지 오는 길에는 걷다 지쳐 사진 한장 없었지만 나가는 길에는 나중에 보고 찾아 온답시고 거의 100미터에 한번씩 사진을 찍어두기로 했다.
우리가 있는 지역이 메디나(medina)라고 불리우는 구시가지였는데 그중 가장 중심이라는 곳이 제마엘프나( Jemaa el-Fna) 라는 곳이라길래 무작정 그곳을 찾아 갔지만 당연히 아줌마가 표시해 준 지도로는 얼마 가지도 않아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마 엘프나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바로 알아먹고 손가락질을 해줬기 때문에 길고긴 미로로 되어 있는 수크를 빠져나가 광장까지 도달할수 있었다. 제마 엘프나 광장은 그냥 넓직한 마당이었는데 그곳에 와 보니 아까 우리가 처음 버스 내린 곳 바로 옆이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하니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고 어둡고 난 뒤에 다시 호텔에 찾아갈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어 냉큼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이미 돌아올 땐 똑같이 헤매 결국 어두워 지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는데 아까 찍어둔 사진이 무용지물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하루종일 거의 먹은게 없이 보낸 하루였지만 지쳐 배고픈것도 몰랐다...

화산재로 며칠간 우리 애간장을 녹였던 유럽의 하늘


언제나 생각지도 못 한 곳에 함정을 파 놓고 돈을 뜯어 먹으려 하는 라이언 에어. 내부도 플라스틱으로 대충 뒤집어 씌워놓은게 경비절감의 초극치. 그래도 유럽은 이렇게 싸게 다닐수 있는 수단이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지는 나중에 나~중에 알게된다.

아프리카 대륙 도착! 공항건물까진 스스로 알아서 걸어가야한다 ㅋ

건물만은 멋있던 마라케쉬 공항

이것이 모로코 돈. UAE와 같은 딜함이라는 화폐단위를 쓴다

공항에서 시내가는 길에 보이던 낙타들. 낯설다.

공항버스가 세워주던 KFC앞. 시내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쨋건 호텔에 도착한. 프레쉬한 민트잎이 가득 들은 차로 여독을 풀어주려고는 한다

집 구조는 시리아처럼 가운데 뻥뚤린 실내정원이 있고 이곳이 거실같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아늑하고 운치있던 객실

다시 호텔을 나서는 길. 정신 차리고 길을 많이 찍어두려곤 했으나 사실 소용없다. 첫번째 사진이 호텔 문

골목길 속의 또하나 골목길인 여기 자세히 보면 호텔 간판이 보인다 ㅋ

위와 같은 길을 수십번 돌고 돌아 드디어 제마 엘프나 광장 도착. 하지만 바로 해가 지고 있어 돌아가야 했다.

헤메다 보니 이미 어두워 지고 있었다


어쨋건 돌아온게 용하다
Trackback 0 Comment 2
  1. 조강태 2010.12.13 02:04 address edit & delete reply

    규배야, 여기 분위기는 왠지 어색하지 않다 ㅋㅋㅋ
    음... 동춘이형을 그리 부러워 할 것은 아니었구나

    • BrianLee 2010.12.13 12:1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괜히 보내겠냐 ㅋㅋㅋ
      카사블랑카 말고는 도시 느낌 별로 어렵더라. 괜히 한국 오기만 멀었을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