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1/10 볼리비아 수도 La Paz에서 느끼는 시골장터의 정

어제 저녁 8시반 우유니를 출발한 버스는 새벽 6시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La Paz)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는 절반정도는 비포장도로를 미친듯이 달려 차가 언제 깨질지도 모를 것 같은 소음을 냈지만 그 후로는 포장도로로 들어섰는지 심하게 쿵쾅거리지 않고 걱정했던 것 보다 훨씬 편하게 왔다. 터미널에 내려 우선 호텔로 가기 전에 라파즈를 나가는 버스를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남미에서도 치안이 안 좋다고 소문난 볼리비아를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에 내일 바로 페루 땅 Puno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알아봤다. 다행히 페루간다고 잔뜩 써 놓은 한 버스 사무실에서 내일 아침 8시에 푸노로 가는 버스가 있다길래 70볼씩 내고 버스표를 끊었다. 하루만에 볼리비아를 떠난다고 하니 다행스러우면서도 한쪽으로는 오기도 힘든 나라인데 이렇게 짧게 떠나는게 아쉽기도 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남미 종합편 론리 플래넷에서 볼리비아는 비중도 적고 딱히 땡기는 곳은 없었는데 딱 한곳이 눈길을 끌었다. 라파즈에서 두어시간 떨어져 있는 티와나쿠 (Tiwanaku /  Tiahuanaco)라는 유적지였는데 항간에는 마추픽추에 필적하는 유적지라기도 했다. 하지만 볼리비아에서 너무나 고증도 없이 대충 복원을 한 덕분에 말도 안되는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고 하는 비운의 유적지였다. 우리에겐 하루밖에 시간이 없으므로 갈려면 오늘 가야했는데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투어는 조금 있다가 바로 출발해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돌아온다고 하니 지쳐버린 우린 가기가 어려워 호텔을 통해 알아보던가 하자며 우선 우리가 예약해 놓은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남미가 대부분 다 그렇지만 라파즈에서는 워낙 택시 강도가 많으니 택시를 조심해서 타라고 했기에 우린 최대한 상태가 양호해 보이고 콜번호등이 잘 붙어 있는 택시로 골라 타기전에 핸드폰으로 차 번호까지 찍은후 탑승했다. 택시를 타고 보는 라파즈의 풍경은 그야먈로 거대한 달동네였다. 저멀리 보이는 언덕위에는 리오데 자네이로 저리 가라 할 만큼 집들로 가득 차 있었고 택시가 달리는 시내 도로도 어디하나 경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 후 우리 호텔이라며 택시가 섰다.

호텔이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라파즈에서는 몇개 없는 호텔이라고 했었는데 특히 다른것보다 평이 좋아 어제 부랴부랴 예약을 하게 되었다. 기대대로 아직 해도 안뜬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고 그 이른 시간에 바로 방도 줬다. 객실은 다른 곳에서 봤다면 그냥 평범한 비즈니스 호텔이네 싶었을수도 있겠지만 볼리비아에서 만나니 감동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고 무려 와이파이도 무료였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씻고 잠이 들었다 깨보니 이미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기대한 것만큼 푹 잘수는 없었던 것이 아침부터 꽹과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나팔에 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우리가 올때는 한산하던 길이었던 호텔 옆이 모두 시장이었는데 사람들도 말도 못하게 버글버글하고 뭔 행사가 있는지 계속해서 북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달룡이만 놓고 나 혼자 타와나쿠에 다녀올까 하고 호텔을 통해 알아보니 이미 투어는 늦었고 택시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는데 그럼 가격이 너무 비싸 티와나쿠는 이대로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오랜만에 한국음식이나 먹자고 달룡이를 데리고 나왔다. 산티아고에서 해먹은 이후에는 제대로 한국음식을 먹어본 지도 오래되었고 요 며칠간 워낙 부실하게 먹고 다녔더니 한국식당이 몹시 땡겨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라파즈에 '한국식당'이라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우린 카메라도 호텔방안에 금고에 넣고 최소한만 들고 길을 나섰다.

큰 길로 나와 제대로 번호가 적혀 있는 택시를 골라 탄 후, 택시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워 지도상 한국식당 근처 보이던 래디슨 호텔로 가자고 했다. 거리는 꽤 멀었는데 택시비는 8볼로 (약 1200원) 대충 이 돈이면 라파즈에서는 다 다닐수 있는듯 했다. 이쪽은 나름 특급 호텔이 있는 것이 말해주듯 라파즈에서는 부촌에 속하는 동네인듯 했다. 지나가며 보이는 건물들도 모두 현대식으로 멀쩡했고 위험한 느낌도 없었다. 우리는 인기 좋은 노점상에서 간식도 하나 줏어먹고 주소의 숫자를 보며 찾아가다 보니 저멀리 Corea Town이라고 적힌 한국 식당이 보였다. 안전한 동네처럼 보인다고는 하나 매우 두꺼운 쇠창살로 된 식당 입구가 라파즈의 치안 상태를 말해주는 듯 했다.

식당안에는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점심 메뉴는 대략 50에서 60볼 정도 했다. 음 볼리비아 돈은 거의 없는데 뭐 카드는 받겠지 하며 우선 밥이나 먹자고 했다. 다 맛있어 보여 고민끝에 김치찌개와 육계장을 하나씩 시켰는데 우리가 굶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아르헨티나 포사다스 이후 처음 사먹어 보는 한국음식은 매우 맛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카드는 받지 않았지만 달러는 흔쾌히 받아 비상금을 또 깨서 밥도 먹고 잔돈을 볼리비아노로 받았더니 현지돈도 내일 갈 만큼은 채워졌다.

우린 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데 이 택시가 우리가 온 길과는 반대로 가는것이 아닌가. 올때 일부러 눈여겨 봐뒀던 길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소한 길로 오는데 이거 진짜 잡혀 가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전혀 알수 없는 이 곳에 갑자기 내린다고 답이 있는것도 아니고 주변이 그리 나빠진것 같지도 않아 우선은 가보자며 한손에는 달룡이 손을 꼭 잡고 나머지 한 손은 언제라도 차문을 열수있도록 하고 가고 있었다. 긴장감을 늦추기 않고 가고 있다 보니 저 멀리 우리 호텔에서 보이던 스타디움이 보였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고 손을 놨다.  라파즈는 언덕이 워낙 심한 동네라 길이 꼬불꼬불하면서도 여러 갈래가 있었나보다. 택시값은 여전히 8볼이었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우린 그앞에 시장 구경을 나섰다. 오늘만 주말이라 장이 섰는지 매일 서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시장에는 미친듯이 사람들이 많았고 동네별로 무슨 퍼레이드 경연대회를 하는지 알록달록 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분에 한팀씩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우리 잠을 방해한 소음의 정체였다.  시장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다양한 먹거리. 라파즈에는 ABC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보다 특히 다양한 먹거리가 보였다. 밑에 3국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촌스러운 모습의 사람들이 말해주듯 스패니쉬만 쓴다 뿐이지 백인 위주의 아래 3국과는 인종도 다르고 먹고 사는 모습도 많이 달랐다.

그중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끈 음식은 소의 허파로 보이는 듯한 부위로 만든 꼬치였다. 꼬치에 붓으로 기름을 발라가며 직화로 구워 옆에 같이 굽던 통감자와 함께 노란 소스를 부어 주는데 녹두나 옥수수 같은 곡물로 만든 소스가 아닌까 싶었다. 맛이야 당연히 좋았다. 사실 멀리 한국식당까지 갈 필요없이 시장에서 이것저것 줏어먹었어도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가격싸고 친절하고 최고였다. 한국돈으로 3백원에서 5백원이면 꼬치도 먹고 생 귤을 바로 짜주는 주스도 먹고 역시 시장 구경은 재밌었다.

우린 이것저것 줏어먹고 호텔방에서 먹겠다고 땅콩도 산 다음에 돌아오는 길에 한 소녀가 귤을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귤도 몇개 사가자며 얼마인지 물어봤더니 5볼이라고 한다. 5볼이면 거의 8백원인데 이거 다른 물가보다 너무 비싼거 아닌가? 아까 그자리에서 짜 주던 귤쥬스도 3볼이었는데 싶었지만 왠지 이곳에서는 몇백원을 깍고 한다는게 죄스럽고 미안했다. 인도에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얄미워 우리나라 생각하면 당연히 싸도 더 깍게 되었는데 볼리비아는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나라가 아니라 그런지 그런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순박했다. 귤도 5볼이나 받는데 이유가 있겠지 싶었는데 귤을 팔던 어린 아가씨는 비닐봉지가 터져 나가도록 귤을 20개 정도 가득 담아줬다. 왠지 잠시나마 왜 이리 비싸 생각했던게 미안하고 눈물마저 핑 돌았다.

해가 지니 시장도 파하고 라파즈 달동네는 거의 암흑이 되었다. 언덕위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는 조명이 들어오니 꼭 인도의 심라 같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려면 걸어서는 근처에 갈 곳이 마땅히 보이지 않았고 또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할텐데 그것도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둠속에 택시 타기도 무서워 호텔에서 대충 저녁을 먹었다. CP Columbus 호텔은 호텔이면서도 저녁 메뉴가 30볼 정도밖에 안 할 정도로 바가지가 없는 가격인데다가 체크인할때 무료 드링크 쿠폰까지 줘 칵테일까지 한잔씩 무료로 마셨다. 정말 뭐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호텔이었다.

볼리비아는 여행하는 동안 결국 기간 계산에 실패해 가장 아쉬운 나라가 되었다. 우유니 투어를 할때만 해도 볼리비아만 한달을 돌러 왔다는 같은 팀의 네덜란드 커플을 보며 대체 뭐 이나라를 한달씩 볼게 있다고 왔나 싶었는데 라파즈에서 몇시간 있다보니 이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조금 더 다양하게 이곳을 보고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아까 내일 페루 푸노에서 갈 호텔도 예약을 해 놓은 상태이고 여행기간도 거의 다 얼마 안 남았는데 더 시간을 지체하기는 어려웠다. 만약 다음에 남미를 온다면 그때는 볼리비아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갖자며 다짐을 했다.


터미널도 클래식하게 생긴 라파즈


라파즈에는 택시 강도가 많다 하여 위에 택시라고 붙고 옆에는 콜 번호가 붙은 놈으로만 골라서 탔다.

라파즈 최고의 평가를 받는 CP Columbus 호텔

시설은 래디슨 같은 곳이 당연히 더 좋겠지만 위치, 가격, 서비스를 모두 놓고 보면 다음에 와도 이곳으로 오고 싶다

호텔 앞은 경기장에 시장에 꽤나 번잡한 시내 중심같았다

그리고 언덕위로 촘촘히 보이는 집들

한국식당 찾아 택시 타고 온 래디슨 호텔 근처. 여기가 라파즈의 부촌인듯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길래 밥먹으러 가는길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먹은 간식

상당히 큰 만두 같은 음식에 갖가지 소스를 쳐서 먹는다. 우리가 선택한 가장 오른쪽의 빨간 소스는 완전 매웠다

드디어 찾은 라파즈 유일의 한국식당. 이름도 한국식당 ㅋ

완전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호텔 앞 시장

내가 가장 좋아했던 허파 꼬치구이

그자리에서 바로 짜 주는 귤 쥬스는 2볼

땅콩도 2볼

귤은 5볼이라길래 아니 뭔 귤이 짜주는 것보다도 비싸 했지만.. 봉투 찢이지는줄.. 꼬마 언니 미안해요 ㅠㅠ


우리 호텔 외관

호텔 식사라 하지만 완전 저렴했다.